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 첫번째 이야기

한 일년 쯤 전에 피디수첩에서 큰 승려단체 대빵할배가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고 까발렸던 적이 있었다. 무려 두번이나. 그때 이 할배 근처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동시에 깨졌던 승려가 있었는데 ‘현응’이라고 했다. 그 주변에서 왔다갔다 하려면 이 승려도 보통 계급장을 어깨에 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겠지. 중과 계급장. 대머리와 함께 모두 번쩍번쩍 🙂

이 승려는 좋은 책을 썼던 사람으로서 나도 그 책을 좋아하며 읽었었는데, 피디수첩을 상세히 보고 난 이후에 그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어느 정도 가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비리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고 노는 수준이 너무 하수라, 그런 책이 어디서 어떻게 나올 수가 있었던지 몹시 의아했으며 또한 그런 출처불명의 책을 한때 좋아했고 그 저자를 존경했던 것에 낙심했었다.

미국의 한 대학교 철학과에 재직중인 한국인 교수 부부가, 바로 이 현응의 책을 영어로 번역하여 미국에서 출판했던 것도 알고 있었다. 이들의 교분은 여러가지 자료를 볼때 상당히 두터웠던 것으로 알았던 바,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그 한국인 교수부부, 특히 외부로 더 알려진 남편 되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 들일지 나는 한편으로 궁금했었다. 한참 지나서 우연히 그 남편 교수되는 사람이 기고한 글을 보게 되었다. 한국사람이라면 흔히 말했을 ‘이 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만약 사실로 밝혀지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또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같은 수준의 내용이 아니더라. 일견 예상했던 바요 그리고 다행이었다.

이야기 잠시 옆길로 빠져요. 손에 장을 지지느니 큰소리 칠때 조심하세요. 내가 우연히 만났던 이곳 사람은 직업이 신문 스포츠란에 논평을 기고하는 것이었는데, 옛날에 이곳에 스타디움을 새로 지으며 건설비용에 관한 많은 언쟁이 있었을때 ‘그 비용으로 누가 지으면 내가 전화번호부를 뜯어 먹겠다’고 논평에 썼었더란다. 그 당시 이곳 전화번호부는 2권이었고 또 매우 두꺼웠었다. 한 두해가 지나서 실제로 그 비용으로 스타디움 건설을 마쳤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전화번호부를 물에 불려서 뜯어 먹었던 것’은 아니고, 공개 사과를 하는 개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 🙂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계기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아직 서로를 모르거나 의식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연히 목격하게 된 상대방의 어떤 좋은 언행이, 마음을 사로잡고 또 마음을 열게하는 경우도 많지 싶다. 그 남편이라는 미국교수는 홍창성박사인데, 그분 이야기인즉 ‘옛날에 내가 현응스님을 한국에서 만났던 적이 몇차례 있었다. 한번은 귀국 선물로 내게 책을 한권 사주었는데, 그때 자신을 위해서 (아마 업무에 관계된) 책을 몇권 동시에 구입하더라. 계산하는 곳에서, 내게 선물하는 그 책은 자신의 카드로 결재하고 나머지는 업무용 카드로 결재를 하더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고 또 책 한권쯤 끼워 넣어서 업무용 카드로 결재한들 누가 뭐라겠나만 그는 구태여 그렇게 하더라’ 이런 내용이었다. 그 박사에 그 스님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고, 비록 그 피디수첩 방영 내용이 전부 날조된 것일 수는 없겠지만 또한 동시에 상당한 오해나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곤경에 처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짐작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밝히자면, 이후에 벌어진 재판에서, 피디수첩의 방영 내용에 근거가 없거나 과장된 내용이 많은 쪽으로 판결이 나서 현응스님이 승소하였다. 진실은 흑백으로 나누기가 어려울 때가 있겠지만, 어떤 색깔쪽으로 더 가깝거나 멀다는 것을 밝힐 수는 있지 않겠나. 쓰레기통에서 책을 다시 꺼내서 잘 말려 놓았다. 비유로. 요새 모두들 전자책 읽지 않나요?

서론이 무척 길었다. 항상 사서 드시는 그대는 모르겠지만, 원래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은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내가 만들어 본 경험은 없지만, 많이 기다려 본 경험에서 하는 말이다 🙂 한 술 더 뜨자. 홍창성박사가 옛날에 쓴 어떤 수필 비슷한데서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양반이 수행에 눈을 뜬 것이, 맞벌이 부부인 부인이 첫 아이를 낳고서 (무슨 이유에서인가 바쁘게 되는 바람에) 이 양반이 한 일년간 매일 기저귀 갈면서 아기를 힘들게 돌 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 솔찍하며 인간적이요 또한 진실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고 그때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자 이제 쥐꼬리만한 본론을 말할 차례가 왔다. 궁극적으로 내 자랑이 되겠다.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책과 관련하여 저자가 밝힌 수행의 단계는 아래와 같다.

[저자의 단계별 정리]
1. 수행자가 고해에서 벗어나고자 깨달으려는 강한 욕구와 집착에 사로잡혀 있다.
2. 깨닫기 위해 경전 공부와 참선에 집념을 갖고 용맹정진한다.
3. 오랜 정진으로 심신이 자연스레 공부와 수행의 습관이 밴다.
4. 깨닫겠다는 의식적 욕구는 점점 줄어들어 아무런 집착 없이 공부와 수행을 계속한다.
5. 심신에 밴 공부와 수행은 자연스레 수행자를 깨달음에 도달하게 한다.

다음에 더 이야기 하자. 기대하시라. 이렇게 올라 갔으니 다음번에는 내려갈 차례 아니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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