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 두번째 이야기

옛날에 한국이 미국원조를 많이 받을때 ‘교육원조’의 일환으로, 서울대 사람들이 미네소타 주립대학교에서 학위를 많이 받았었다. 한때 서울대 교수들 중에서 이 대학 나온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미네소타 주립대’ 하면 지명도가 아직도 상당하지 싶다. 이 미네소타 주립대는 영어로 ‘The University of Minnesota, Twin Cities’ 라고 하며 세계 50대 대학, 미국내 톱20, 재학생 숫자 5만에 가까운, 실제로 유명하고 좋은 대학이다.

미네소타주에는 대학교가 많다. 그리고 주립대학교도. 1995년 경에 미네소타 지역의 칼리지 (전문대) 그리고 교육대등을 합쳐서 ‘미네소타 주립대학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그 이전까지 ‘Moorehead State University’ 그리고 ‘Mankato State University’ 등의 독자적인 이름과 역사를 가진 미네소타 지역 소규모 전문대 혹은 교육대들이 이 시스템 일부가 되면서 현재 알려진 ‘미네소타 주립 대학교 (무어헤드)’ 그리고 ‘미네소타 주립 대학교 (맨카토)’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책의 저자 홍교수께서 재직중인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무어헤드)’는 재학생 6천명 정도의 소규모 지방 대학교로서, 세계 대학 랭킹에 나타날 수준은 아닌 community college 혹은 미국내에서 중하위권 수준의 지방 대학교라 할 수 있다. 참고로 홍교수께서 가르치는 철학과의 경우 학사과정만 개설되어 있으며, 또한 이 대학에는 (불교등 종교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종교학과는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 내가 일하는 대학교는 종교학과가 있는데, 학부생 커리큘럼을 보면 이 책에서 다루는 그런 내용과 수준의 과정들이 있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분이, 미국 정규대학에서, 그것도 이공계통이 아닌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드문일이고 또 이분의 불교관련 연구 내용도 물론 훌륭하겠지만, ‘미네소타주립대학’ 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하는 이분의 책과 이야기들이, 한국불교(인)의 모자람을 되돌아보고 또 좋은 발전 계기로 삼는 것을 넘어서, 무슨 엄청나고 새로운 권위로 받아들여질까 해서 하는 말이다. 한번 물어 봅시다. 우리나라 대학전체에서 100위권 혹은 그 아래 수준인 작은 지방대학교에서, 학부생 3,4학년들을 가르치며 사용한 철학 혹은 종교학 교재를 어떤 교수가 출판했다고 한다면, 그대가 서점에 갔을때 혹은 전자책을 구매할때 거들떠 보기라도 하겠나? 그런데 이 책은? 미국 지방대 학생들과 영어로 대화했던 내용은 무언가 차원이 다르고 거룩한가? 나도 영어권 대학 그리고 대학생들 좀 안다고 생각하는데, 그 아이들이 허우대가 크고 우리나라 또래들보다 좀 더 독립적인 것은 맞지만, 무슨 대단한 지적수준의 소유자들거나 한국 대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는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아이들에게 홍교수께서 해준 이야기들이 적혀 있는, 물론 출판하면서 가감이 있었겠지만, 책이라는 것을 알고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홍창성교수 본인이 책 타이틀을 그렇게 하자고 했을까. 돈벌이 하자고 출판사 뇬넘들이 잔대가리 굴린 것이지. 참고로, 홍교수는 이력을 밝힐때 분명히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무어헤드)’ 라고 밝히는 분이며, 도를 많이 닦은 분이니, 실력과 글의 내용으로 승부하고 싶어할 분이라고 나는 믿는다.


웃기는 이야기 하나 덧붙인다. 탁구 치지? 나도 치는데, 지나가는 사람 열명하고 붙으면 아마 9명에게는 이기지 싶은데. 물론 그래봐야 어릴때부터 제멋대로 친 동네탁구 수준이지만. 최근에 부서 사람들 여러명이 수요일마다 체육관에서 탁구 치는 모임을 조직해서, 나도 가끔 비가 오거나 해서 산에 가기 어려울때에 끼어서 뚝딱거리며 쳤었더랬다. 요새야 밥주걱처럼 생긴 채로 (양면 모두 사용), 놀부 마누라가 흥부 빰 때릴때 쥐던 모양으로 채를 잡고 치는 것이 대중적이지만, 내 세대만 하여도, 탁구채가 펜홀더라고 형태도 다르고 (앞면만 사용) 또 쥐는 법도 다른 채 밖에는 없었다. 몇번 치면서 어울리다 보니 재미도 있고, 또 게임을 하면, 다 이기는데 한사람에게만은 이기기가 어려워서 연구도 하게 되면서 좀 엮이게 되었다.

혹시 상상이 될란가 모르겠는데, 앞면밖에 사용할 수 없는 이 펜홀더 라켓으로 몸 왼쪽으로 오는 공을 치려면, 팔을 돌려서 손바닥이 상대방을 향하게 비틀어 쳐야만 한다. 점점 젊어지니 이렇게 하는데 부담이 생기고 또 괜스래 어려운 느낌이 들더라 (연장 나무래는 목수?) 그래서 소위 이면타법이라고 펜홀더 라켓 뒷면에도 고무를 붙여서 (‘중국펜홀더’처럼) 쳐봐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남편이 탁구치는 시간에 부엌에서 ‘명상하면서’ (일전에 권장했던데로) 일하고 있을 그대를 위하여 설명 드리자면, 오른손잡이인 놀부 마누라가 밥 좀 달라는 시동생 흥부의 빰을 밥주걱으로 일딴 한번 때리고 (마주선 흥부의 왼쪽빰에 작렬) 팔이 되돌아 오는 길에 흥부의 오른쪽빰을 밥주걱의 반대면으로 두번째로 강타하는 바로 그 모습이 되겠다. 이때 손등이 상대방을 향하고 있다 🙂 여러가지 노력을 들여서 라켓을 바꾸고, 유튜브도 많이 보면서 연구 그리고 집에 있는 탁구대에서 연습도 했었더랬다. 어제 실전에서 해봤는데 그야말로 0점 전혀 안통하더라. 이면으로 치기도 어렵고 또 수십년 쳐온 습관대로, 왼편으로 공이오면 팔이 저절로 돌아가니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더라.

집에 와서 아내에게 옷으며 고백을 하고서는 뒷면에 붙였던, 이제는 무겁기만 한 고무를 떼서 버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탁구 초보자도 아니고 또 나름 연구에 연습을 했음에도, 실전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무용지물 그야말로 0점이라는 것이 내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것을. 외국에서 특별히 가벼운 고무를 사오고 나무를 깍고 생쑈를 했던 그 짓이 비록 허무하고 우습게 끝이 났지만, 어쩌면 탁구 시합에서 한두점 더 따는 것 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체험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렇게 빨리 현실을 깨닫고 제자리로 되돌아 온 내 자신도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일본의 한 야구감독이 했다는 말이 기억난다 ‘몇번 해 본 것 가지고는 시합때는 택도 없고, 수백번 수천번을 실수없이 확실히 할 수 있는 기술이어야 될까말까 하다’고. 그리고 산속에서 독학으로 바둑을 연마하여 바둑의 도가 텃다고 생각하며 하산한 형제가, 시내 기원에 가서 참패를 당하고서 자신들의 수준이 고작 아마추어 몇급 정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더라는 이야기도.

나도 블로그 쓰면서 조심하려고 하지만, 한번 입을 열면 제 잘난 맛에 입 다물기가 어렵다 🙂 어디서 누구에겐가 선생 노릇하려 들때 조심해야 한다. 대가리로 생각해 본 것 혹은 그저 몇 번 해본 것 가지고는 실전에서는 택도 없다니까. 그리고 바로 그 실전 (현실) 때문에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쓰고 하는 것 아닌가? 그 심정 이해하면 함부로 입 놀리기 어렵고 또 장사를? 이런 종자들에게 마땅한 표현을 내가 일전에 했었다 ‘딸 팔아서 술 받아 쳐먹는 애비 꼴’이라고. 쉽고 쿨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세상 참 허무하고 어렵게 사는 꼴이다. 삶은 실전이고 인생은 현실입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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