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 두번째 이야기

지난번에 우리는 ‘마음을 가라 앉히는 명상’ 혹은 ‘마음을 집중하는 명상’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해 보았어요. 이런 명상을 팔리말 (Pali language) 로는 Samatha 혹은 Samadhi 라고 하며, 영어로는calm meditation 혹은 concentration meditation 라고 말해요. 이 명상을 많이 하신 스님들의 말씀이, 밥맛도 좋아지고 잠도 잘오고 심신이 편하고 건강해진다고 해요. 많이 해봐요 🙂 하지만 이런 명상은 불교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예요. 다른 종교에서도 하고 또 붓다가 살아 계시던 고대 인도지역에도 흔히 어떤 수행의 한 방편 (방법)으로 쓰였다고 해요.

이제 불교에서만 하는 명상에 대해서 말할 차례예요. 붓다께서 직접 가르치신 명상입니다. 이런 명상을 팔리어로는 Vipassana 라고 하며 영어로는 insight meditation이라고 말해요. ‘비파사나’ 보다는 ‘위빠사나’ 정도로 발음되는 것 같아요. 무었을 명상하는 것일까요? 이 명상의 대상은 무었일까요? 바로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붓다의) 지혜를 (wisdom) 증득하는 것이 되겠어요. 그 분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고 되세겨 보고 또 내 자신의 삶과 경험에 비추어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 또 수긍하면서 깨달음을 서서히 얻게 되는 과정이 이 명상의 목표라고 해요. 그러니 이 명상을 할려면 우선 붓다의 가르침을 좀 알아야 하겠지요. 예를 들면, 지난번에 이야기 했던 두카에 (Dukkha) 관한 붓다의 네가지 가르침도, 이 명상의 아주 좋은 대상이 되겠어요. 이런데 요긴한, 몇가지로 잘 정리 요약된 붓다의 (다른 종류의) 가르침들을 차차 전달해 드리겠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런 명상을 할 대상이 더 많아지겠지요.

혹시 궁금해 할까봐 이야기하는데, 붓다의 가르침을 보면 (원본 경전들에 따르면) 가르침 X는 1,2,3,4 가르침 Y는 첫째는 무었 둘째는 무었 셋재는 무었… 이렇게 되어 있는 경우가 참 많아요. 붓다께서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해 주시는 훌륭한 선생님인 것이 이유겠지만, 후세의 제자 비구들께서 혹시나 붓다의 소중한 가르침이 한마디 한자라도 제대로 전달이 안되고 와전 될까봐 이렇게 딱 정리해서 우리가 어릴때 구구단 외우듯이 수십년을 달달달달 외워서 전달하고 또 전달했던 것이 또 다른 이유가 되겠어요 (세상에 언어는 너무 많지만 문자는 별로 없기 때문이지요. 붓다께서 사용하셨던 그 팔리 언어도 문자가 없어서 이렇게 구전된 후대에 문자화 되었어요. 세종대왕님과 관련학자들께 경례!) 인간의 한계를 알았기에, 건방짐이나 가벼움없이 그저 최선을 다해서 그분의 가르침을 가감없이 전달해 주고자 했었던 그 분들의 마음이 실려 있는 것이지요. 또 눈물이 나는군요. 좀 잘 살아 보고 싶어서, 좀 덜 괴롭게 좀 덜 시달리며 살아보고 싶어서, 행복을 찾아서 지푸라기라도(?) 잡아 볼려고, 이렇게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서 인간적으로 애쓰고 난리치고 하다가, 이런 경전 문구들만 남겨 놓고 다 가셨잖아요. 애잔한 마음이 들어요. 어떤 훌륭한 연세 많은 불교학자도 말했어요. 붓다의 가르침을 알면 알아 갈수록, 애잔한 마음 짠한 마음이 자꾸 느껴진다고. 붓다를 향해서, 자신을 향해서 그리고 주변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말이예요. 나도 좀 그런 기분이 드는군요.

셋길로 빠졌내요. 자 한가지만 예를 들고서 오늘은 마무리하고 내일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해요. 아침에 배우자와 다투셨어요? 기분이 안 좋으시군요. 자 바로 이 상황을 붓다의 Dukkha 가르침에 대입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는 거예요. 담배 한대? 웃기는 실화로, 동남아 절에 가면 스님들이 식사후에, 어리거나 늙었거나 한 자리에 모여 앉아서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해요. 외국인들이 보면 놀라고 기급할 일인데요, 붓다가 살았던 시절에는 담배가 없어서 그에 대한 가르침이 없어요. 물론 선진국에서 온 교육받은 스님들이야 그 폐해를 알고 또 한국분이라면 사회적 예절을 아니 (고승의 면전에서) 담배를 빡빡 피우지는 않겠지요. 어쨋던 필요하면 한대 피세요 🙂 (술은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생각을 해야 하는데, 술을 마시면 바로 그 기능이 정상 작동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 생각을 해보자는 거지요. 이런 일이 이전에도 있었나? 그렇다. 그때도 이런 기분이었지? 그렇다. 지난번 다투고 1달이 지나고 나서는 어떻게 됬더라? 다시 손잡고 뽀뽀도하고 히히덕 거리고 있었다. 좋더나? 그렇더라. 그렇다면 그 좋은 것을 당장 하지? 그 1달을 혹시 1주일 아니면 이틀로 줄일 가능성이 있겠나? 있지만 상대방이 태도를 먼저 바꿔야 한다. 혹시 상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겠지. 그렇다면 내가 그래도 나이도 많고 또 여러가지로 강자인데 (착각인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더 쿨하지 않을까… 이런식으로 말이예요.

투카가 있고 (배우자와 다투고 괴로운 상태) 두카가 있게 된 원인이 있고 (표면적으로는 다툼 언쟁, 기저에 깔린 보다 큰 이유, 어떤 것에 반응하는 내 자신의 카르마, 버턴을 누르는 어떤 언행을 자신도 모르게 하는 상대방등등) 두카가 없어질 수가 있고 (이해, 화해, 시간이 지남, 망각) 그리고 그렇게 두카를 없게 할 길이 있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입장을 좀 더 이해, 술이 상황을 증폭 악화 시킨다면 술을 이런 상황에서 피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던지 아니면 아예 끊던가, 자신의 카르마를 들여다 보며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등등. 참 다음에 또 먼저 싸우기 시작하면 아파트 소유권을 넘겨 주겠다고 각서를 써주는 것은 소용 없어요. 법정에서 유효한 증거로 안 받아 줌. 헤헤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게 됬을까 🙂 ) 이렇게 차근 차근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면서 내가 여태껏 배운 (비록 쥐꼬리 만큼이라고 해도) 붓다의 가르침에 ‘실제 상황’을 대입을 시켜 보면서 좀 생각을 조용히 해보는 것. 바로 이것이 일종의 ‘위빠사나’ 명상입니다. 할 수 있겠지요? 보니까 자주 싸우는것 같더만 기회 많겠네 🙂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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