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괴로움의 절반 혹은 그 이상

언제 어디나 몸이 탈이 나서 괴로운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한국처럼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오염된 물 이외에는 마실물을 구할수가 없거나 굶주려 영양실조로 여러가지 병에 걸려 몸이 아픈 사람들 보다는, 아마도 마음이 탈이 나서 괴로운 경우가 훨씬 많지 않을까? 마음이 탈이 난 상태가 지속되다가 몸이 탈이 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굳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다시 말하지 않아도, 당신과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이 탈이 나는 주된 원인은 ‘인간관계’ 때문인 경우가 압도적이겠지. 당신 이외의 사람들이, 그 나쁜 넘들이, 당신에게, 죄없는 당신에게, 유형 무형으로 끼친 것들의 결과로…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많은 괴로움을 겪으면서 산다. 공해가 없다고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구밀도가 낮다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가 적은 것도 아니다. 평균 수명을 비교해보면 한국이 더 높다. 다만 약간 시간적 여유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고 또 궁금한 바가 커서 좀 찾아보고 궁리해 본 것들을 당신과 나누려고 한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사람이 괴로우면 도망치거나 찾는다’고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도망치는 것이야 누구나 아는 그대로. 그런데 ‘찾는다’는 의미는 아마 ‘해결책을 강구한다. 대책을 찾아본다. 원인을 규명해본다’ 이것들이 섞인 것이 아닌가 싶다.

몇년전에 EBS에서 시리즈로 방영했던 ‘대한민국 화해 프로젝트 – 용서’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도 ‘찾는다’의 일환으로 년전에 열심히 보았었는데 최근에 마음이 복잡할때 다시 찾아서 몇개를 시청하였다. 년전에도 물론 찾는데에 크게 도움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더욱 큰 도움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패턴이, 어떤 기승전결이 좀 눈에 보이는 듯한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가만히 되앂어보니, 년전에 붓다의 가르침속에서 읽고 또 읽고 배우고 또 배웠던 바로 그 내용들이더라. 하수는 바로 코앞에 대줘도 못본다더만…

내가 보건데 ‘대한민국 화해 프로젝트 – 용서’에 등장하는 소위 ‘원수지간’인 사람들 열중의 아홉은 그 원수지간이 된 원인이 (시작이) ‘섭섭한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이 섭섭한 마음이란 것이 얼핏 보면 크게 해롭거나 위험한것 같지 않아보일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인간관계를 작살내는 화약같이 위험한 것이 아닌가 한다.

‘섭섭한 마음’이 시간이 흐르면서 반복이라는 영양분을 받아먹고 자라면 아주 쉽게 ‘원망하는 마음’으로 변화 성장한다. 원망하기 시작하면, 덩달아 내가 해준것에 대한 본전생각이 나기 시작하고 이러면 끝장이 멀지 않게 된다. 사랑은 미움의 씨앗이라더만, 그러면 이 섭섭한 마음의 씨앗은 무었이었을까? ‘기대’가 가장 대표적인 씨앗이 아닐까? 서로 마음이 맞고 또 죽이 맞아 오가는 가운데 인간관계가 발생하고 발달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오가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한 사람에게는 마땅하고 당연한 그 무었이 상대방에게는 아닌 경우가 생길 수 밖에는 없다. 그런데 이것을 좋은 타이밍에 적절한 대화로 풀기란 현실적으로는 참으로 어렵다. 별로 이권도 없고 나오는데로 지껄여도 문제 없었던 어릴때도 이것이 안됐는데, 나이 들어 자기딴에는 자존심도 높고, 걸리는 것도 많고 또 서로 조심해서 언행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쌍방에게 좋은 타이밍을 찾고 적절한 대화로 이런 상황을 해결 하기란 대부분의 경우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한쪽에 혹은 양쪽 모두에 앙금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기대하는 것이 일어나지 않거나 더 나쁜 경우에는, 한쪽은 기대에 맞추어 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전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 이때부터 기대라는 씨앗이 발화를 시작하여 섭섭한 마음이라는 싹을 틔우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직도 크게 나빠 보이지 않을수도 있다.

섭섭한 마음이 싹이 터서 서서히 자라게 되면, 미움과 원망이라는 잎들이 점점 더 무성하게 자라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기대 -> 섭섭한 마음 -> 원망과 미움 -> 인간관계 파탄이라는 코스를 밟게 되는데, 이때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끝이 나는 경우는 또한 드물다고 하겠다. 원망과 미움을 폭발시키면서 장열히 산화하는 곳에, 우정이나 부부애 그리고 동료애등의 파편이 널부러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기대라는 씨를 뿌리지 않을수는 없을까?’똑똑한 당신은 이미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연구한 바로는 이게 좀 역설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씨를 뿌리지 않을수도 있고 또 뿌리지 않을 수가 없을 수도 있고 좀 그렇다.

인간이 오늘날 이러한 문명을 이루고, 21세기 한국이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바탕에 바로 이 인간들이 하는 ‘기대’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기대가 없으면 도전이 없고 시도가 없고 발전이 없고 향상이 없는 것 아닐까? 인간의 이처럼 모순된 운명이, 그야말로 양날의 칼이, 바로 이 ‘기대’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잠시 잡담하나 하자면, 년전에 부탄인가 어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를 다녀온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난 인상만으로, 이 나라의 행복지수가 세계 최고라느니 무슨 이 나라 사람들이 인간행복의 열쇄를 쥔것처럼 떠들어 댓던 적이 있었다. 비유하자면, 이번에 코로나바이러스를 한국 사회전체가 정부의 주도로 대응을 하면서, 국내에서는 그야말로 끝없는 비난과 비평 그리고 책망의 목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던 것같은데, 막상 다른 선진국들이 한국과 유사한 상황에 쳐하고 나니, 그들로 부터 찬사와 부러움을 사며 한국으로부터 배우고 본받아야겠다는 말이 많이 오고가는 상황과 유사하다 하겠다. 다시 말하자면, 부탄의 넓은 초원에서 말똥이나 줒어다가 불때서 씻지 못한 시커먼 손으로 쩔어빠진 그릇에 차 끓이고 밥해먹다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리면, 얄짤없이 그대로 사망이라는 말이다. 가난이 얼마나 진저리 쳐지고, 절대적인 가난이 만드는 카오스속에 인간들이 얼마나 절망하고 낮게 되는지, 자기손으로 가난을 물리져 본적이 없고 대부분의 것들이 주어진 세대들은 알도리가 없다. 그러니 부탄이니 부탄가스니 하는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망상을 하는 것이다. 가거라. 가서 1년만 살아 보거라. 아직도 부탄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말이 나오는지. 인간아 인간아…

기대가 적으면 섭섭한 마음이 적다고, 부탄처럼 살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내가 말했듯이 이게 좀 역설적인 면이 있는 것이, 부탄과 반대쪽인, 예를들면 노르웨이나 스위스처럼 부유함과 높은 국민수준으로 모든 것들이 정돈되어 제자리에 있고 (있어야 하고) 칼같이 돌아가는 사회에서 살면 사람들이 행복한가하면 또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야라꼬?

다음편에 계속하겠다. 야비한 3류 연속극 같구나. 광고 팔아 돈벌이 할려고 결정적인 순간에 ‘다음 이 시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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