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가 동쪽으로?

이곳에서는, 골프를 배우는 첫날부터 필드에서 치면서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늙은 코치 머레이도, 나와 아내에게 공을 잔디 위에 놓아 주면서 주저하지 말고 쳐보라고 했었다. 골프장에 19번째 혹은 20번째 홀처럼 연습을 할 수 있는 장소가 한 두 군데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때 코치는 나와 아내에게 또 이렇게 말했었다 ‘공을 때리려 하지 말고, 흡사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채를 스윙하여 공이 놓여진 자리를 지나가거라’. 세월이 꽤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첫날 그가 우리에게 힘주어 말했던 바로 이 한마디에 그가 오십년 골프 친 진리가 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이 진리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습득하게 해주려고 그 이후에 노력했었지만, 우리의 능력 부족으로 대부분의 경우 별 성과 없이 끝이 나고 말았었다. 하지만 은퇴하여, 쿡아일랜드에서 매일 매일이 봄 여름임을 즐기는 그에게, 누군가가 한마디로 골프를 잘치는 법을 지금 말해보라고 하면 그는 아마 똑 같이 말할 것이다. 그가 평생을 수만 수십만 시간을 투자하고, 수천 혹은 수만 라운드를 치면서 체득한 진리를 ‘말로 표현하라’고 하면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가르치는 사람들은 각자의 수준과 능력대로 그가 말한 이 진리를 해석하고 또 나름대로 시도했을 것이다. 우리 내외도 그랬듯이…

그와 몇차례 연습 라운드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정신없이 내가 무슨짓을 하는지 그가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고 후딱 지나갔었다. 하지만 드물게 내가 멀쩡한 정신이었던, 그 날 그 홀에서, 그가 드라이브 치는 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가 정말로 자기가 가르친데로 스윙을 하는 것을 ‘나도’ 보았고 그 과정과 결과가 모두 참으로 훌륭했었던 것을.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아도, 만약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매우 좋은 아마츄어골퍼가 되지 싶다. 그때는 몰라서 못했고 이제는 머리로 알아도 실제로 실현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한 라운드에 겨우 한 두번? 머리로 아는 것을 몸으로 (현실에서) 꾸준히 일관되게 실현할 수 있을때, 그때 참으로 아는 것이 되고, 자신의 골프가 (혹은 삶이) 한 단계 두 단계 향상되고 발전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골프를 치지 않거나 혹은 거부감이 있는 그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

한 스웨덴 사람이 태국인가 어딘가 불교국가를 여행하면서 깨달은 것을, 영화속에서 유머러스하게 잘 표현했던 것을 기억한다. 자기 나라에서는 Why? How? When? 같은 생각들이나 말들이 중요하고 또 자주 쓰는 말인데, 이곳에서는 그런말들은 쓰지 않는 것이 좋고 (또 일상에서 잘 쓰지도 않고) 대신 ‘is’ 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고 또 흔히 쓰더라고. 무슨 뜻인가 하면, ‘아! 원래 이렇구나’ ‘그게 그렇다’ 이렇게 받아들여야 (편히 잘) 살지 ‘왜 이렇게 하지?’ ‘어떻게 저렇게 하지?’ 혹은 ‘언제나 하지?’ 이런말들을 계속하면 자신도 주변도 괴롭히다가 결국은 죽게(?) 된다는 뜻 🙂

옛날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기억나나? 그때 그 ‘달마’는 어떤 배 불룩 튀어 나온 늙은 영감 조각상 이름이 아니라, 붓다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지칭하는 ‘Dhamma’를 의미했던 것이다. 그때 우리 골프 코치 머레이는, 자기가 깨달은 ‘골프의 Dhamma’를 한마디로 ‘공을 때리려 하지 말고, 흡사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채를 스윙하여 공이 놓여진 자리를 지나가거라’ 라는 말로 표현 했었다. 2,600년전 붓다께서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Dhamma’를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수준으로 아는대로 표현하자면).

‘세상 모든 것들은 어떤 조건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따라서 아무것도 영속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 당신과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도 (인간의 몸과 마음도) 이것에서 예외가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당신과 나는 그렇게 존재한다. This is the way it is.’

그때 늙은 코치 머레이가, 자신이 체득한 골프의 ‘담마’를 우리 내외에게 첫날 말해 주었던 이유는, 우리가 ‘어른 대 어른’으로 즉 ‘논리와 추론을 하는 존재’들로 (logic and reasoning) 만났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물론 돈을 받았으니 무언가 쿨한 이야기를 해줘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얻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도 장사에는 필요했을테지만 🙂 만일 우리 내외가 그 늙은 코치 머레이의 어린 자녀들이었다면 그는 우리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서 골프를 가르쳐 주었을까?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모르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런 ‘담마’ 말은 하지 않았지 싶고, 다만 그를 따라서 그가 운영하는 그 골프장에서 많이 그리고 자주 골프채를 가지고 공놀이를 하면서 ‘놀게’ 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가 가끔 필요할 때에는 ‘자 이럴때는 요렇게 쳐봐’ 하면서 그냥 보여 주었을 것이다. 사랑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 보면서. 그렇게 한 몇년을 따라서 ‘놀고’ 나면, 키가 어른의 2/3밖에 안되고 근력이 어른의 반도 안되는 어린 아이들이지만 소위 싱글을 그냥 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골프라는 어떤 특정 운동 어떤 한가지 기술에 대한 이야기니, 인생 전반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른이 되고 나서, 삶의 어떤 부족함 비어있음을 느끼게 되어 혹은 여태껏 추구해 왔던 것과는 다른 어떤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어 이렇게 붓다의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되었을때, 되돌이켜 잘 생각해 보아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미 나이를 먹어 버렸는데 어떻하니? 이미 지금 이 자리에 와 버렸는데 어쩌란 말이니? 그러면 뭐 안된다는 말이야 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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