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 – 잊지 않고 마음에 되새김

내가 자주 방문한다고 말했던 식물원에는 플라그(기념동판) 붙은 장소나 벤치가 많다. 그중에는 매우 오래된 플라그도 있는데, 몇개가 기억이 난다. ‘에니가 앉던 곳’ (Annie’s Seat) 이라는 플라그가 붙은 벤치는, 지금부터 백년도 훨씬 전에 이곳에서 일하던 조경사의 아내가, 식물원에서 일하던 남편을 이 자리에 앉아서 지켜보곤 했었다고 동판에 기록되어 있다. 경치가 아름다운 장소다.

130년쯤 전에, 물에 빠진 동생을 구출하려다가 익사한 10살 형을 기리는 동판이 박힌 벤치도 있다. 아름답고 좋은 장소에 있어서, 나도 그 벤치에서 점심을 먹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 주변에 위치해 있어서 출퇴근때 자주 지나치는데 ‘아우는 잘 살다가 죽었을까?’ ‘자기를 구하려다가 죽은 형에 대한 죄책감을 어떻게 감당했었을까?’ 그런 생각이 뜬금없이 떠오르곤 했었다.

옛날에, 조선시대 종교 박해에 관한 책자를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나라에서 믿지 말라는 종교를 믿는다고 신도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얼마나 나쁘게하고 또 심하게 고문을 했었던지 그 묘사들을 읽으면서 진절머리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가지 지금도 자주 생각나는 이야기는, 힘이 장사이던 좀 무식한 시골청년 신자가, 때리고 주리를 트는 악랄한 고문에도 배교하지 않겠노라고 잘 버티고선 감방으로 되돌아 와서 많은 신도들에게 귀감도 되고 또 칭찬을 받았었다고 하는데, 이 젊은이는 ‘때리는 것은 참겠는데 배고픈 것은 정말 참기가 어렵다’면서 감옥 바닥에 깔아 놓은 그 더럽고 오래된 가마니를 (짚으로 만든) 뜯어서 먹었다고 한다. 지금은 죽고 없는 먹새 버둑이 (레브레도리트리버 종) 녀석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지금도 퍼먹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면 ‘정말 배고프면 죽는 것보다 괴롭구나’ 이해가 된다.

오늘 우연히 신문에서 ‘절두산성지’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그 책자를 읽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목을 자르던 산. 150여년 전에 병인박해라는 종교 탄압 시기에, 약 8,000명의 어떤 종교의 신도들이 참수를 당했었다고 한다. 옛날 이야기 들으면, 그때는 정말 무식하고 무시무시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자주 있는데, 이때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종교를 믿었었네. 참고로, 무조건 잡아다가 죽인 것이 아니라, 그 종교를 버리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고문을 견디다가 결국은 목이 잘리는 것을 기꺼이 ‘선택’했던 신도들의 숫자가 그렇다는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이렇게 다른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또 종교나 신념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머리로 알지만, 이런 실화들은 늘 우리 가슴에 무언가 뭉글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인간이 원래부터 이렇게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사회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어떤 부산물적인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들을 붓다께 정확하게 설명해 드리고 어떤 가르침을 주십사 한다면 과연 어떤 가르침을 주실까? 오늘, 내가 가끔 언급하는 ‘티라다모 큰스님’께서 가르치는 녹음된 설법을 한두개 들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자신을 포함한 붓다를 따르는 사람들이, 수행에 정진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자신이 진전을 이루고 또 어떤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때, 바로 거기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정작 수행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되돌아 가게 된다는 말씀이었다. 이것 참 어려운 이야기 아니냐? 목표를 정하고 그 과정을 하나하나 죽기 살기로 이루어 나가도 그 목표에 도달하기가 무척 어렵지 않겠나 싶은데, 목표나 과정에 정력을 쏟지 말라는 소리처럼 들리니… 그럼 어떻게 그 목표에 도달합니까? 만약 이렇게 묻는다면 아마도, ‘수행은 삶 자체요 과정이지, 그것으로 도달할 목표도 결과적으로 획득할 대상도 사실은 없다’ 이 비슷한 (계속 모호한) 대답을 듣게 되지 싶다.

한 이십여년 전에, 어떤 종교의 수장을 (말그대로, 한국에서는 그 종교의 가장 높은 지위에 있던) 이곳에서 며칠 모시면서 가까이에서 보았던 적이 있었다. 이분이 그 연세에도 여러모로 열리고 또 깨인 분이라는 것을 자주 옅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 이분이 떠나기 전에, 여기에 있는 한국대사가 이분을 위해서 만찬을 열었었다. 나도 참석 했었다. 만찬이 끝나고 잠시 오락(?) 시간이 있었다. 마침 어떤 젊은 여성 공무원도 우연히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다. 이 연세 높은 어떤 종교의 수장께서 가라오케를 하시며, 이 젊은 여성의 팔과 어깨등의 신체부위를 성추행으로 보일만큼 이리저리  만져대는 것을 나는 바로 옆에서 보았다. 내가 좀 충격을 많이 받았었다. 지금이면 아무도 그렇게 못하고, 만약 그랬다가는 성추행으로 고발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한 특정인의 인간적인 한계를 가지고 그 종교 전체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또한 그런 비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와 나 그리고 당신, 우리 모두는 한계가 많은 ‘다 같은’ 인간이기에…

요새처럼 일본과 어르렁거릴 때, 만약에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순신장군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좀 많지 싶다. 그런데 그분과 앉아서 대일본관, 해군작전, 군민협동 등의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면 현대의 한국 그리고 한국해군에도 도움이 될 훌륭한 말씀들을 듣게 되지 싶다. 하지만, 그분과 여성관, 가족관, 평등한사회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나눈다면, 내 짐작에 거의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듣게 되지 싶다. 이순신장군을 폄하하는 이야기 아니다.

그대에게 종교란 무었인가? 무었을 기대하며 또 무었을 얻고자 하는가? 어떤 변치 않는 가치나 도전 받지 않는 절대적인 무었이 거기에 있고, 또 그것을 배워 자신의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건 구현하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왜?’ 라는 질문에서 붓다의 구도가 시작 되었고, 그 질문에 대한 최고의 대답이 붓다의 가르침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가 아니다. 이러한 붓다의 가르침을 ‘직업삼아’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과 또한 그들을 추종하는 ‘좀 무지한’ 사람들이 떼지어 하는 짓이 그 가르침을 ‘종교’로 만들었던 것이고 정치적인 색채를 띠게 만들었겠지. 잘 해보세요. 나는 관심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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