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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날의 이야기

너와 나의 기쁨과 사랑을 노래한 지난 여름 바닷가를 잊지 못하리. 그 얼굴에 노을이 물들어 오고 머리카락 바람에 헝클어질 때 너와 나의 기쁨과 사랑을 노래한 여름날의 바닷가를 잊지 못하리. 그 얼굴에 노을이 물들어오고 머리카락 바람에 헝클어질 때 너와 나의 기쁨과 사랑을 노래한 여름날의 바닷가를 잊지 못하리.  

현역으로 죽는다

이 분 누군지 혹시 아세요? 신중현님입니다. 올해로 여든이 넘으셨다고 하네요. 아침에 이 사진을 보고 충격을 좀 받았어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 한 두해 전에, 우리내외도 좋아하는 박인희님이 티비에 (아마 수 십년 만에) 등장하셨어요. 그분이 노래하는 모습과 목소리를 듣고서 우리는 이렇게 말했었어요. ‘아! 이분은 나오지 않으셨어야 했다. 그 청아하고 고왔던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영원히 남아 있었던 …

명상 – 현대판 만병통치약?

일전에, 그 옛날 박카스병에 넣어 팔던 ‘가짜 만병통치약’ 이야기를 했었지? 설탕물에 아스피린을 좀 갈아 넣었던지, 아니면 시골에서 양귀비를 몰래 키우던 넘들이었다면, 그것 이파리라도 삶은 물을 좀 섞었던지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내 생각에는, 정말 센 넘들 무리에 속해서 주류들과 함께 잘 나가는 사람들은, 밖에서 들릴만한 잡음도 만들지 않고 또 무슨 재미있거나 신기한 이야기 거리도 별로 만들지 …

오역의역

Treasures of the Buddha’s Teachings
Ajahn Thiradhammo, Aruno Publications 2013

The Four Noble Truths
Ajahn Sumedho, Amaravati Publications 2011

Contemplations on the Seven Factors of Awakening
Ajahn Thiradhammo, Aruno Publications 2012

Mindfulness: The Path to the Deathless
The meditation teaching of Ajahn Sumedho
Ajahn Sumedho, Amaravati Publications 2013

 


다른 누구로도 말고 오직 스스로를 등불로 삼으라.

깨달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깨달은 바를 현실의 삶에서 하루하루 실천하며 사는 것이 어렵다.

한 십년 가까이 모친을 가까운 사찰 주말마다 모셔다 드렸던 적이 있었다. 밖에서 코딱지나 후비며 멍때리다가 법회가 끝나면 과자나 한쪽 얻어 먹고 돌아 오는 수준이었지만, 서당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언젠가부터 ‘나도 붓다의 가르침을  배워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하는 원이 생기게 되었다.

카르마와 번뇌가 많은 나는, 삶의 해결책을 밖으로 부터 찾고자 일찌기 시도하였었다. 결과 운좋게도, 아름답고 좋은 나라로 떠나와 쉬운 직업을 가지고 별 간섭 받지 않으며 살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자유와 행복은 이런 외부적인 환경의 개선만으로는 얻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 잘났네 하는 아집으로, 사람들이 흔히 가지 않는 길들 이리저리 찾아 홀로 걸으며 살아 왔다. 차례 성과를 거두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내게 긍극적인 해답을  것은 아니었다.

나는 붓다의 가르침이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자유로운 ,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구속되지 않고 구애받지 않으며 사는 행복한 , 바로 그러한 삶을 있는 방법과 지혜를 그분께서 알아내시고, 자신과 제자들의 삶을 통해 실천으로 증명 하셨던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 그분의 가르침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알고 싶다. 후세 사람들이 종교로 채색하고 제멋대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가감한 ‘그들의 가르침’ 말고, 참된 ‘그분의 가르침’을. 나는 궁금하다. 그분의 참된 가르침을 배워 실천하면 나도 궁극적인 자유와 행복을 과연 얻을 수 있는지.

붓다의 가르침이 중국에서 천년을 머문 후 한국으로 건너 온지도 천오백 년이 넘었다. 수천 년 세월 동안 중국문화와 중국어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서, 흡사 공기나 물처럼, 그것이 없는 상태를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존재 여부조차 깨닫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크고 당연한 일부가 되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한국어 단어의 절반 이상이 중국어 단어들이며,  발음 또한 당나라 시대 장안에서 사용했던 중국어 발음에 가깝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가? 붓다 가르침을, 중국인들이 그들의 문화와 언어로 해석하여 만든 중국책들을 통하여 배우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을, 인도사람들이 그들의 문화와 언어로 해석하여 만든 인도책들을 통하여 배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때는 어쩔 수가 없었고 또 다른 대안도 없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인도 스리랑카를 식민지로 지배했었던 영국은, 19세기부터 그곳에서 입수한 Pali 언어로 쓰여진 원본 불경들을 영어로 번역하였다. 또한 지난 반세기 동안에는 수많은 서구인들이, 태국 스리랑카 티벳등지에서 불교를 수행하고 승려가 되어 불교를 서구에 전파하였다. ‘Thai Forest Tradition’이라 불리는 태국 불교의 한 종파도, 현지에서 수행하고 스님이 된, 영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인들을 통하여 이들 나라에 전해지게 되었다모친의 은혜로 인연이 닿아,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Thai Forest Tradition절에서 수행하는 미국 캐나다 영국 뉴질랜드 스님들을 알게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그들이 수행하고 사는 모습을 멀지감치에서 지켜 보았다. 또 그들의 글과 말을 읽고 들어 보았다. 나는 이 분들을 통하여, 붓다 가르침을 원형에 가깝게 유지해 왔다고 알려진 태국 상좌부 불교, 그리고 그 불교가 교육받은 서구인들을 통해 이해되고 수행되고 또 발전되어진 불교를 접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불교재단 중학교에 우연히 입학한 소년이 아무 뜻도 모르면서 ‘옴마니반메훔 아축불 아미타불 불공성취불’을 월요일 아침마다 낭송했던 그 인연이,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지구 반대편에서 다시 이어졌다.

먼저 4개의 책을 골랐다. 오랜 기간 동안 내가 직접 보고 들어온 두 분의 존경할만한 스님들이, 붓다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들을, 영역된 Pali 원어 불경 바탕으로 설명해 주는 책들이다. 한 분은 미국인이고 또 한 분은 캐나다인이지만, 이 두 분이 비구의 계를 받아 (스님이 되어) 수행한 기간을 합치면 백년 가까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이 책들을 의역하여 이곳에 남길 작정이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어떤 수준의 의역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처음 선택한,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는 방법이며 또한 수행의 한 방편이니, 나는 다만 시도하고 노력할 것이다.

세상에는 이미 말과 넘쳐나니 하나라도 보태려는 의사는 없다. 이렇게 남기는 것은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함이지만, 혹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쁘고 빚갚는 기분도 들겠다. 하지만 안되도 그만이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것이다. 남길 것도 없고 갚을 빚도 없으며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붓다의 말씀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출퇴근 길에 공동묘지를 지나며 매일 보고 또 본다.

다른 누구로도 말고 오직 스스로를 등불로 삼으라. 붓다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기신 말씀이다. 나도 이렇게 살기를 희망한다.

깨달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깨달은 바를 현실의 삶에서 하루하루 실천하며 사는 것이 어렵다. 증명할 것도 겠지만, 굳이 증명하고자 한다 해도 스스로의 삶을 통해서 자신에게 하는 것이지, 타인들과의 언쟁을 통해서 남들에게 증명할 것은 없다. 잠시 왔다 가는 우리의 삶은, 머리와 말 위주로 떠들썩하게 살기 보다는 몸과 실천 위주로 차분히 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